고요함과의 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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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하룻밤에 일어나는 과정이 아닙니다. 이것은 천천히 스며드는 무엇입니다.

그것은 기억함에 관한 것이고, 누군가 내게 상기시켜 줌에 관한 것이며, 그대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향한 여행으로 매일 한 걸음씩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대는 영화 보러 가서 표를 산 뒤, 앉아 있다가, 20분 후에 펑펑 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근본으로 돌아가는, 그 아름다움으로 돌아가는 이 여행은 아주 느리게 가는 여행입니다.


 

 
 

 

 

 

 

 
 

 

 

그대는 달릴 수 없습니다. 경쟁은 없어요. 이정표는 없습니다.

"8킬로 전방, 5킬로 전방, 3킬로 전방" 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근접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 왔습니다." 라고 격려하는 표지판도 없습니다.

그러지 않고, 그랬던 적도 결코 없습니다.

 

 

 
 

 

 

 

 

 
 

 

 

단순함은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기쁨은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찾는 사랑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근본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상기시켜 줘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기되어야 할 다른 것에 관해서가 아니라 - 근본적인 것에 관해 상기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살아있음에 관해서 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라. 완성된 만족과 하나되라. 그 기쁨 속에 있으라. 그 느낌 속에 있으라. 그 평안 속에 있으라. 그 조화로움 속에 있으라." 라고 말하는 그 내면의 느낌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가 거기 있을 때 아주 감미롭습니다. 백만 가지 잡다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 단 하나가 있습니다. "나는 이 존재를 느낀다. 나는 이 호흡을 느낀다. 나는 이 생명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감미롭다." 라고 말하는 그 하나.

 

 

 
 

 

 

 

 

 
 

 

 

호흡이 오고, 나는 그걸 반깁니다. 그것이 떠나면 나는 그 다음 호흡을 기다립니다.

나는 그것이 왔음을 자각하고, 그것이 떠났음을 자각합니다. 그것이 왜 그렇게 마술과 같은지 묻지 마세요. 다만 그러합니다. 공기가 아니라, 호흡에 관한 생각이 아니라, 그것이 내게 가장 놀라운 느낌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죠.

거기에 무엇이 요구되었습니까? 다른 모든 것이 멈추기 시작합니다!

내가 재미를 원한다면, 나는 내면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진정한 재미입니다. 그것은 의심으로부터 떨어진 자리입니다. 약간의 의심-좋아요, 그댄 그 정도는 꾸려갈 수 있습니다. 마치 고춧가루 같죠. 그걸 양념으로 먹으면 괜찮아요. 하지만 누가 고춧가루 한 사발을 갖다 주고 "이것이 너의 점심이다" 라고 하면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많은 의심이 들어와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놔둡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의심이여, 가자. 나를 네가 가고싶은 곳으로 데려가 다오.” 그대는 의심이 그대를 어디로 데려가리라 생각합니까? 분명한 이해의 장소로? 결코 아닙니다.

 

 

 
 

 

 

 

 

 
 

 

 

나는 어제의 산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의 재주에만 맡겨 놓았다가는 나는 내일을 기다리는데 어제란 날을 다 썼을 테니.

빈 상자가 왔는데 나는 그 안에 무얼 담아야 한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래서 빈 채로 그것은 가버렸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상자가 왔어요. 그대는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갈 것입니다.

잘 됐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구요? 아무것도?

생명이 시작되었고 어느날 그대는 생명이 그대와 함께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깨어있음이 왔고 깨어있음이 갔습니다. 생각이 왔고 생각이 갔습니다. 내면의 무언가가 파도처럼 밀려와서 알고 싶어 하고, 그것과 함께 있고싶어 하고, 이 생명이 진짜이길 원하고, 모든 머리카락, 모든 세포, 모든 섬유 하나하나가 여기 진짜인 무언가가 있음을 느끼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다 마이더스 왕의 손길처럼 - 그대가 만지는 것마다 환상으로 변합니다. 누군가 와서 그대에게 무언가를 상기시켜주기 까지는.

 

 

 
 

 

 

 

 

 
 

 

 

이 호흡과 나의 관계가 - 수평선 위로 보입니다 - 그것은 내가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일순간입니다. 그건 여기에 왔다 가 버릴 겁니다. 변할 것입니다. 변화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호흡과의 관계는 변할 것 같지 않습니다. 나는 변했습니다. 하지만 가슴과의 관계는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부름이 거기 있고, 나는 거기에 응합니다.

그리고 기쁨이 있습니다 - 이해가 있고, 그 속에 지혜가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 섬이 있는지 압니다. 그것은 내게 수영할 자유를 줍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섬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 물속에 뛰어드는 모험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익사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나는 다른 이의 발자국을 뒤따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 나는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길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내가 듣기에 내 가슴으로부터의 부름이 말하는 거라면, 내가 시작할 곳은 바로 여기입니다. 나는 그렇게 단순하면서도, 그렇게 소중한 고요와의 친교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는 영원한 것과의 유대, 관계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도 조금 덕 볼 것이 있으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내가 그 진짜와 동석하도록 하세요. 내가 내 가슴과 가까이 있게 하세요. 내가 혼란과 의심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세요. 내가 두려움에서 멀리 있게 하세요.

 

 

 
 

 

 

 

 

 
 

 

 

“세상”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좀 이상한 장소입니다.

실제로 증오의 불길이 이 세상에서 타오르는 데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할까요? 별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이 그대가 사는 곳입니다. 이 놀라운 시나리오와 그대 안의 호흡 사이의 대조는 얼마나 큰지요. 모든 혼란과 가장 굉장한 평화. 얼마나 큰 대조입니까.

굉장한 슬픔과 굉장한 기쁨이 –서로에게서 2인치 만큼도 안 떨어져 있습니다. 빈 손이 아닐 수 있음은 얼마나 굉장한 기회인지요.

그대가 빈 손으로 가고싶지 않다면 지금 빈 손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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